이 책은 대만의 한 젊은이의 사랑과 인생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연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여인에게 흔들리는 등의 내용은 요즘의 연애 풍속도를 볼 수 있다. 또한, 그 만의 독특하고 신세대적인 문체는 재미있게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추억과 한 평생 농부가 되려는 꿈을 지녔으며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이제 어른이 되고 어릴 적 꿈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화와 독백을 감각적인 필치로 묘사하였고, 중국어의 독특한 언어유희를 통해 나름대로의 개성과 유머를 발산하고 있다. 젊은이의 사랑을 가볍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인생의 고뇌와 역경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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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잉무촨
2월21일 생, 물고기자리, 현대 문학 소설가
현대 감각이 넘치는 필체와 거침없는 감정 표현으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 매료되고 있다.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들을 소설 속에 녹아들게 하여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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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이끌림
만남
파티
갈등
당황
약속
동거
한 여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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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번역
p59~ part 3 파티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종이에 아무렇게나 긁적여본다.
훼이메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알아? 지금 네가 가장 필요한 때인데.
악마가 찾아왔어, 마치 그 옛날 푸른 초원에서 신을 시험하던 것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어.
마치 에덴동산의 그 한 마리 독사처럼.
동산 위의 열매를 먹으라고 쉬지 않고 나를 유혹하고 있어
그거 알아? 지금은 그 유혹을 뿌리쳤지만 다음에도 이겨낼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너무 혼란스러워.
지금 이 순간 네가 내 곁에 함께 있어 힘든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면
하지만 도무지 너를 찾을 수 없으니.
7.
자오샤오쉬안(赵晓萱)과 재회를 하고 3일이 지난 토요일 새벽 6시, 원래 근무 시간 대로라면 나는 8시에 퇴근한 뒤 하루 반나절을 쉬고,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 8시에 다시 출근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타이베이 역으로 훼이메이(惠美)를 마중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부 팀장에게 이미 조퇴를 신청해 놓았다. 정말 오랜만에 일요일에 맞춰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와 훼이메이는 2주 전부터 이번 휴일에 함께 양밍산(陽明山)으로 온천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워 두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5시, 겨울이라 아직 하늘은 컴컴한데 이 새벽에 나는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경관님, 외부 전화 연결합니다.” 아래층에서 당직근무를 하는 한 대원이 내선으로 알려왔다.
내게 전화할 사람이라곤 훼이메이 뿐인데 그녀가 탄 기차는 5시 58분에야 도착한다. 지금 그녀는 기차에 타고 있을 시간이고 게다가 휴대폰도 없는데 그렇다면 이 전화는 훼이메이의 전화일 리는 없다.
별일이다. 이 시간에 내게 전화할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네, 잉무촨입니다.”
“나야, 자오샤오쉬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취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어, 웬일이야?” 난 당황하며 대답했다.
“내 전화 받으니까, 반갑지 않아?” 술 취한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유혹적이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샤오쉬안의 전화는 무척 의외였지만 사실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그대로 얘기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했다.
“무슨 일 있어?” 난 사실대로 말하기보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지금 시간 괜찮아? 나 있는 곳으로 오지 않을래?”
“무슨 소리야, 난 지금 근무 중인데!” 라며 그녀의 말에 돌려서 거절하였다.
“거짓말, 내가 좀 전에 전화 바꿔주던 사람에게 다 알아봤어. 이제 곧 퇴근이라고 하던걸.”
‘이런!’ 난 잠시 멈칫했다. 샤오쉬안은 내가 곧 퇴근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걸까? 젠장, 분명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말해준 게 틀림없다. 경찰근무규정에 보면 동료의 근무상황을 누설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함부로 규정을 어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그는 어리둥절해져서 나를 쳐다보았다. 관두자,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와라, 응? 이리로 와. 사람들도 많이 모였단 말야.” 자오샤오쉬안의 흐느적거리듯 취한 목소리는 묘한 느낌으로 나를 유혹했고 심장의 고동마저 빠르게 했다.
“응? 이리로 오라고······”
“내가 지금 퇴근하기는 해도 처리할 일이 있어서 바로 돌아와야 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미안해, 안되겠는 걸, 다음에 봐.”
“그럼, 내일 저녁은 어때?”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아, 내 말은 오늘 저녁 말이야. 대학 동기들 몇 명이랑 양밍산에 있는 온천호텔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거든. 저녁에 오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오늘 저녁이면 난 훼이메이와 함께 양밍산에서 온천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자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걸, 미안해.”
“쳇!” 하며 그녀는 수화기를 힘껏 내려놓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타이베이 역까지 가면서 한 가지 생각이 시종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오샤오쉬안은 친구들과의 파티에 왜 나를 초대한 걸까? 이 생각을 떨쳐버리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훼이메이와 양밍산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내가 생각해야 할 사람은 훼이메이 이지 자오샤오쉬안이 아니다.
겨우 생각을 훼이메이에게로 돌려놓을 때 쯤 타이베이 역에 도착했다.
05:30
훼이메이가 탄 기차는 05: 59에 도착할 예정이니 아직 시간이 남았다. 나는 대합실에 앉아 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05:53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 린페이(林飛)는 여주인공 리팡(筣邡)에게 그녀가 왜 자신을 파리라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두 사람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부분까지 읽으면서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지만, 훼이메이의 기차가 곧 도착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접고 책을 덮고 기차역 출구 검표소로 향했다.
06:05
훼이메이가 탄 기차의 승객들이 검표소로 쏟아져 나와서는 나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웬일인지 훼이메이를 찾을 수가 없다. 승객들이 다 나오고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훼이메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조바심을 누르며 계속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 훼이메이가 다른 일로 플랫폼에 남아 있는 건 아닐까? 6시 33분이 되도록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플랫폼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입장표를 사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한 바퀴를 둘러봤지만 훼이메이는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06:51
무슨 일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직까지 훼이메이가 보이지 않다니, 그렇다면 타이베이로 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신장(新莊) 분국으로 발령을 받은 후 4개월 동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김없이 만났었고, 그녀는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감기에 걸렸으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나를 찾아왔던 그녀가 아닌가. 아무리 봐도 그녀가 오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이야말로 더더욱 큰일이다.
07:18
훼이메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훼이메이에게 일이 생겼다면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생각은 온통 훼이메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걱정뿐이다. 부디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10:41
집으로 돌아와 이미 세 시간째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훼이메이 로부터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11:33
지루한 기다림 끝에 훼이메이의 중학교 동창인 정이캉(鄭宜康)의 전화를 받았다. 훼이메이가 그녀에게 부탁하여 내게 전해준 말은 요 며칠 너무 바빠서 내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난 정이캉이란 친구에게 훼이메이나 그녀의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훼이메이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게 이 말을 전해달라고만 했으며 전화상의 말투로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이캉과의 통화를 끝내고 내 머리 속은 온갖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럴 리가 없어. 도대체 무슨 일로 내게 직접 전화할 시간조차 없었단 말인가? 혹시 바람이라도 난 건 아니야?
13:04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점심으로 때울 치킨 도시락을 샀다. 도시락을 다 먹은 후, 치우지도 않고 탁자 위에 내버려 둔 채 잠을 자려다 보니, 이번 주에 훼이메이가 오지 않으면 방청소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생각이 났다. 결국 탁자 위에 버려둔 음식 그릇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친 김에 방안에 널려 있던 쓰레기도 정리하였다. 그리고 빨래까지 말끔히 해치웠다.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지금 시간 13: 52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얼마나 훼이메이를 그리워하는지.
p159~ 18
우리는 분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시(華西)가에서 야참을 먹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뱀탕집이었다. 난 뱀술을 한 잔 시키고 뱀탕 한 그릇을 마저 주문했다.
“끔찍해라······” 뱀탕집 주인이 뱀을 잡는 광경을 샤오쉬안은 얼굴을 가린 채 차마 보지 못했다.
“아, 정말, 당신 정말 이상한 사람 아냐, 하필이면 이런 데로 데리고 오는 건 뭐야?”
“어.” 나는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주인이 뱀의 간을 꺼내 술 속에 넣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았다.
“이걸 정말 먹는단 말이야?” 주인이 이제 막 꺼낸 뱀의 간이 담긴 뱀술을 올려놓자 샤오쉬안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내게 묻는다.
“이 안에 내 추억이 담겨있거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추억이라니, 무슨 추억?” 샤오쉬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우리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거라고는 언제나 술에 취한 모습이었지. 한 번도 맨 정신인 적이 없으셨거든.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받아온 상장을 보시더니 웬일로 맨 정신으로 돌아오셨어. 그리고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놈 얼굴에 번진 여드름을 물끄러미 보시고는 별다른 말씀은 하지도 않으시고 날 자전거에 태우고 뱀탕집으로 데리고 가셨어. 아버지는 그날 내게 갓 뽑아낸 뱀의 간으로 만든 뱀술을 사주셨지. 그때부터 난 뱀탕집만 보면 꼭 들어가서 뱀술을 마시지.”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술잔에 가득 담긴 나의 추억을 뱃속으로 털어 넣었다.
곧이어 차려진 뱀탕을 먹으면서 나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종일 술에 찌들어 살던 아버지가 어느 날은 어머니의 멜대를 잡아채는 장면에서 그녀는 놀라움에 떨었고 , 아버지가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얘기에서는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중학교 시절 전교에서 꼴찌였다는 얘기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내가 참다못해 이렇게 묻자 그녀는 “내가 뭘?”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내가 전교 꼴찌를 했다는데 놀라지도 않아?”
“어, 그래, 대단한 일이네, 놀라워”
“문제는 너의 그 표정이야. 조금도 놀라는 표정이 아니잖아.”
“어, 그럼, 이런 표정이면 되나?” 그녀는 애써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눈은 번쩍 떠있고 입술은 반 쯤 열려서 닫힐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이런 표정을 지었어야 한다는 거지?”라고 재차 묻는다.
“그만 두자, 그 이상한 표정 집어치워, 밥맛 떨어진다.”
뱀탕집을 나와 우리는 가자전(역주-蚵仔煎, 까오슝(高雄)의 특산물인 굴에 신선한 채소, 계란을 함께 넣어 프라이팬에 부친 음식)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는 가자전 외에 생초화지(生炒花枝)도 팔았다. 우리는 가자전 한 접시와 생초화지 한 접시를 시켜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녀는 먹는 양이 너무 작아서 음식 마다 조금씩만 손을 댈 뿐이었고 국물은 전혀 마시지도 않았다.
“여자들은 참 안 됐어.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으니 말이야.” 접시를 다 비우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바보”라고 쏘아붙였다.
“지금 나보고 하는 소리야?”내가 물었다.
“그럼 너 말고 여기 바보가 또 있어?” 그녀가 나를 쌀쌀맞게 바라보았다.
“뭐..” 그녀의 표독스런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여자들이 적게 먹는 게 남자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그녀는 정색을 하며 내게 말했다. “내가 소식을 해서 좋은 몸매를 유지하려는 것은 그저 나보기 좋으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니까. 고리타분한 멍청이들이 하는 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자는 자기만족을 위해 아름다워지려고 한다 이거야. 알아, 이 바보야?”
“그래, 인정하지. 내가 바보였어.” 난 진심으로 반성했다. 전통적인 남성중심의 사고로 여자들을 함부로 판단했으니 사실 말을 잘못한 것이다.
“내가 인심 썼다. 귀여운 바보를 내 너그러이 용서하노라.”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난 뒤 우리는 액세서리 용품점에 들렀다. 그녀는 몇 가지 머리끈과 장신구를 샀다. 내가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려 하자, 그녀는 극구 사양하며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가게를 나올 때 그녀는 뭔가 찜찜한 표정이 되었다.
“왜 그래?” 나는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은 말하기 곤란해.” 그녀는 애써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몇 개의 노점상을 지나고 난 뒤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나 뭐 좀 사러 갔다 올 테니 다른 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지 뭐”, 난 저만치에 있는 과일가게를 가리키며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말했다.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얼마나?”
“빨라야 30분”
“뭘 사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그냥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다녀와”나는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다.
30분이 지난 뒤 그녀가 돌아왔다. 손에는 하나 가득 꾸러미가 들려있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종이봉지의 입구는 단단히 묶여 있어서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난 과일 먹어야지.” 그녀는 자리에 앉더니 구아바, 바나나, 수박, 메론 이렇게 모둠 과일 한 접시를 시켰다.
그녀는 정말 맛나게 먹었다. 그녀가 이렇게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눈 깜짝할 새에 접시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비웠다.
“알고 보니 채식주의 자였네.”
“응. 난 세끼 식사 모두 과일을 주로 먹어.” 그녀가 방긋 웃어보였다.
“하하” 나도 따라 웃었다. 미인은 과일을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그녀가 모둠 과일을 먹는 동안 나도 수박 한 접시를 시켜서 먹었다.
과일을 다 먹고 나서 그녀가 또 다시 계산을 하겠다고 하여 그냥 내버려두었다.
“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계산을 끝내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래, 택시 잡아서 먼저 데려다 줄게”
“엥! 보청기 필요한 거 아니야?” 그녀는 기분이 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내가 보청기가 필요하다니?”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이렇게 되물었다.
“말했잖아, 집에 가자고” 그녀는 ‘집’이란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집에 가자고?”
“그래,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고. 우리 집. 그러니까 네가 사는 곳 말이야”
난 순간 당황스러웠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뭐야, 내가 너 있는 곳으로 가서 사는 게 싫다는 거야?”
“그게..그게 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 그녀는 나와 동거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녀는 왜 그토록 서둘러서 나와 동거할 결심을 한 걸까?
<감상평>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처음 소설 사본을 보면서 제목부터 풍겨오는 뭔가 가벼운 통속 소설의 인상을 받았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지 조금은 걱정스런 맘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추억과 한 평생 농부가 되려는 꿈을 지녔으며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30대인 저에게 묘한 친근함을 주었습니다. 요즘에 걸 맞는 애정소설이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깊이를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