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해외신간자료 > 일어권 서   명 : 허무하도다 한스럽도다 아아 슬프도다 저   자 : 아사다 지로 출판사 : 분   류 : 언   어 : 분   량 : 300 발행일 : 2006 ▣저자소개: 아사다 지로 (浅田 次郎) 1951년 도쿄 출신. 본명 이와토 고지로(岩戸 康次郎). 필명은 처음으로 신인상 예선을 통과했던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수상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예선 통과가 기뻐서 필명으로 삼았다. 자위대에 입대해 다단계 판매와 패션 부티크 경영 등 다채로운 직업을 전전하면서 집필활동을 이어가다가 1991년 《빼앗기고 참는가 とられてたまるか！》로 데뷔하여, 1995년 장편소설 《지하철을 타고 地下鐵にのって》로 제1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吉川英治文學賞] 신인상을 수상하고, 1997년 첫 단편소설집 《철도원 鐵道員》으로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작품에 장편소설 《천국까지의 100마일 天國までの百マイル》 《프리즌 호텔 プリズンホテル》 《활동사진의 여자 活動寫眞の女》 등이 있고, 단편소설 《낯선 아내에게 見知らぬ妻へ》 《가스미초 이야기 霞町物語》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사랑하는 마음에 깃드는 마법 - 잔잔한 괴담 일곱 가지 읽을수록 은은하고 따뜻하게 마음이 채워지면서 잊혀졌던 옛 기억이 찾아온다. 문학의 원천은 괴담이란 사실을 이만큼 훌륭하게 표현해 낸 책을 나는 모른다. - 히가시 마사오(東 雅夫)(<유(幽)>편집장 / 문학평론가) 일본 특유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해후할 때, 은은하게 생겨나는 기적. 이승과 저승을 방황하는 자들의 슬픔과 행복을 그린 고급 괴담집. 괴담의 고수가 자아내는 그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이야기. ----------------------------------------------------------------------------------------------- ▣ 이 책의 구성 분명 귀신이야기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폐가 속이나 짙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 그런 귀신이야기는 아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철도원>이나 <천국까지의 100마일>과 같은 감동과 눈물을 기대하고 펼친다면 역부족일 수 있으나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함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전개한 이 단편집은 또 하나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해냈다. 이야기는 방학 때마다 신사로 모여들어 할머니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처음과 마지막 이야기의 무대인 간페이 신사(官幣大社)다. 도쿄에 위치하면서도 외곽의 오쿠타마(奥多摩)의 깊은 산 속에 대대로 신사의 성직자를 지내는 집안의 아이들이다.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한 쪽이 남겨진 연인의 이야기 <붉은 끈>. 천년 묵은 여우가 씐 여자아이에 관한 <여우 이야기>. 두 이야기가 모두 할머니(이모님)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다. 일곱 가지 이야기 속에서 호러다운 호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나머지 다섯 편은 시대설정과 톤이 전혀 다르다. 회사를 부도내고 도망 다니는 남자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환영을 본다는 <벌레잡이 불>. 악에 받쳐 연인을 버린 남자가 이야기하는 그녀의 죽음, <뼈의 유래>. 젊은 간호사의 마음의 갈등을 다룬 <옛 남자>. <객인(客人)>은 부모님과 사별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에 얽힌 오싹한 괴담이다. <오래 된 이별>은 <철도원>에서 느껴지는 마음 짠한 감동과 슬픔이 느껴진다. 한편 이야기 전개가 빨라서 독자가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으나 단편으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 ▣ 목차 붉은 끈 벌레잡이 불 뼈의 유래 옛 남자 객인 오래 된 이별 여우 이야기 ----------------------------------------------------------------------------------------------- ▣ 본문 내용 붉은 끈 여름방학, 옹기종기 모여 할머니께 무서운 이야기를 해 달라 조르는 아이들. 장소는 효험 있기로 유명한 간페이 신사(神社). 천황 일가도 꼼짝을 못한다는 권위 있는 신사다. 할머니도 아이들도 성직자들의 자손인데, 주인공의 둘째 이모인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간페이 신사에는 신도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다. 어느 한겨울밤 늦은 시각에 깊은 산길을 지나 신사를 찾아온 두 연인이 있었는데 서로의 손목을 붉은 끈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남자는 제국대학의 대학생, 여자는 기생이었다. 동반자살을 각오한 것으로 본 신관(神官)은 둘을 설득하여 남자의 가족과 연락을 취했으나 그날 밤 두 연인은 쥐약을 마신다. 애석하게도 남자만 즉사였다. 다음날 남자의 가족이 찾아와 아들의 주검만 거두어갔다. 여자는 그날부터 죽은 자 취급을 받았고, 진혼의식마저 치러졌다. 동반자살에서 남겨진 자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라는 것이다. 결국 사흘 후에 여자도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 그 방은 숙박객에게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 한동안 폐쇄했다가 몇 십 년 후에 다시 개방되었다. 지금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바로 5번방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 주인공은 목이 마르고 열이 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자신을 끌어안는 존재. 유령일까 아니면 엄마였을까, 이모일까…. 벌레잡이 불 회사를 부도내고 가족과 함께 도망중인 쓰야마.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해 온 고지식한 사람이라 달리 처신도 못하고 도망 다니고 있으나 옛 집에 있던 자전거나 피아노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남몰래 눈물 흘리는 아내를 보면 이제 한계를 느낀다. 그냥 콱 죽어버리고 보험금을 남길 생각도 했다가 가족을 위해 참았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쓰야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고 흰 벤츠를 탄 모습을 여러 사람이 목격하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그런 말을 할 때에는 얼마나 힘들면 환상까지 보나 측은하게 여겼는데 아들과 축구를 하고 놀아주었다는 '그 놈'은 고등학교 시절 축구 골키퍼를 한 사실마저 쓰야마와 똑같았다. 친절한 집주인과 잡담을 나누다가 '그 놈'에 대해 언급하자 집주인은 전쟁터에서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부대원들은 전멸하고 고립무원 상태에서 집주인은 상처에 몰려드는 버러지를 먹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 막 상륙한 듯한 완벽한 장비와 건장한 몸이었고 부대명과 이름마저 똑같았다. 그가 내민 소금을 머금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자신과 그가 뒤바뀌어 있었고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자!"며 힘을 북돋고 사라졌다. 집주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간 쓰야마는 인기척 없는 집안을 둘러보고 깨닫는다. 상황이 호전된 것을…. 뼈의 유래 어딘가 모르게 비밀스러운 요시나가. 으리으리한 저택에 홀로 사는 잘 나가는 증권맨이다. 늙지도 않고 독신생활을 맘껏 구가하는 줄 알았더니 실은 아내가 있다며 유일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학교 때 셋이 친했던 사치코를 재수시절 학원에서 다시 만났다. 부모들의 의견에 따라 재수할 동안에는 친구로 지냈는데, 대학에 합격하고서도 교제를 금지 당했다. 두 집안의 신분 차이도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외교관인 사치코의 부친이 요시나가가 일하는 찻집을 찾아와 성공적인 인생이 보장되고 나서 교제를 허락하겠노라고 하기에 요시나가는 경멸하는 뜻으로 돈을 요구했다. 얼마 후 사치코는 목숨을 끊었고 요시나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부모를 저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실제로 사치코의 부모가 거지가 되어 찻집에 와서 납골함을 두고 사라졌다. 요시나가는 사치코의 뼈를 품에 안고 울었다.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요시나가에게 정신 차리라고 조언한다. 그 거지들, 그리고 납골함은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그러나 요시나가는 말을 잇는다. 집사람을 만나고 가라, 곧 정원에서 돌아온다며. 문이 삐걱대는 소리. 그리고 부인의 이름을 부르는 요시나가. "사치코!" 옛 남자 하마나카는 긴자의 오래 된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다. 긴자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취직한 다카라베 병원은 외관은 멋있지만 건물과 장비가 오래되어 병원으로서의 기능은 매우 낮다. 환자도 나이많은 장기환자 뿐이다. 이직률도 높아 하마나카는 간호과장, 수간호사에 이은 서열 세 번째다. 어느 날 나이 쉰의 노처녀 수간호사 이쓰미가 "옛 남자를 만난다."고 한다. 우연히 목격한 이쓰미의 데이트상대는 험프리 보가트 뺨치는 멋진 신사였다. 선배가 마음 놓고 데이트할 수 있도록 응급호출 담당을 자청한 하마나카는 호출 직후에 연인과 결혼문제를 두고 다투느라 도착이 늦어지고 만다. 일도 연애도 어중간한 상황에 자책감을 느끼는 하마나카 앞에 느닷없이 다카라베 병원의 죽은 2대 원장이 나타난다. 이쓰미 간호사가 만난 멋진 신사였다. 그는 간호과장, 이쓰미 수간호사와도 상의했다며 "병원 걱정은 말고 시집을 가라"고 말한다. 그 후에 들려준 의사로서의 숭고함, 그리고 옛 인연으로 평생 독신으로 병원에 헌신한 간호과장의 이야기를 통해 하마나카는 간호사로서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혼잣말을 해 본다. '옛 남자'와 사랑에 빠져볼까…. 객인 가와즈는 얼마전에 부모님을 함께 여의었다. 오랜 간병생활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며 가와즈는 예기치 못한 풍족한 유산으로 회사도 그만두었다. 부모가 죽은 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을 준비하며 긴자에서 잠시 들린 바에는 하즈키라는 깔끔한 인상의 여인이 있었다. 영리하고 선선한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무렵, 하즈키는 가와즈의 집에 와서 추석 의식을 함께 해 주겠노라고 한다. 서로 하룻밤 상대라 생각하고 가와즈는 집에 가서 <영혼맞이 불>을 그녀와 함께 지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맞이한다는, 때로는 불청객 영혼도 불러들인다는 연기와 피어오르는 옛 기억. 대학생 때 임신사실을 숨기고 술집 여자 미나코와 결혼하겠다고 부모에게 소개했다가 허락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녀에게 낙태를 강요하자 미나코는 그날로 철길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와즈는 그녀의 죽음을 완전히 외면하고 살아왔다. 한편 하즈키는 멋진 여자였다. 침대 속에서도 그렇게 잘 맞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집에 안 가겠다는 하즈키를 달래던 어느 날 오후, 절의 스님인 친구가 허겁지겁 찾아왔다. "너희 부모님의 영혼이 아들을 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일단 부모의 불단 앞에서 불경을 외는데 2층에서 기다리던 하즈키가 쿵쿵대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다. 스님은 서둘러 가와즈를 절로 데리고 가서 실은 미나코의 시신을 자기네 절에서 거두었고, 가와즈 일가에는 비밀로 하고 뼈는 후에 가와즈 집안의 납골당에 함께 모셔주라는 선대 스님의 유언을 일러준다. 과연 지금 함께 있는 여자의 존재는 무엇일까. 가와즈는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을 들어서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탁한 목소리. "다녀오셨어요." 오래 된 이별 야노의 소속부대는 롯폰기 자택에서 5분 거리에 있다. 물론 면회나 외출은 금지되어 있다. 심한 감기로 나오지도 않는 소변을 쥐어짜내며 그리운 아내를 불러본다. 나이 스물에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직후에 영장을 받고 나온 것이다. 오늘 밤은 야간보초를 서야 하는데 최근 들어 다른 부대에서 교대인력이 투입되지 않고 있어 부대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들 한겨울에 여름군복을 입고 있어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보초병이 인계해 준 총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야노는 추측한다. 곧 남쪽 격전지로 보내지는구나. 죽음을 예견하며 또다시 아내를 생각하는데 한밤중에 저 멀리 노파가 서성댄다. 흰 꽃까지 들고 있는 게 저승사자 같다. 그 노파가 야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편 몇 십 년 후의 롯폰기. 삼수생 다이키는 공사현장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이다. 어느 날 밤 제 3 게이트의 통행을 통제 중에 흰 꽃을 든 할머니가 서성댄다. 또 나타났구나. 그런데 오늘은 제지를 해도 이쪽을 향해 곧장 걸어온다. 공사 트럭이 나오던 터라 다이키가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한다. 다시 야노의 부대. 겁에 질린 야노에게 노파가 말을 건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이미 다 끝났답니다." 노파의 얼굴이 상냥한 아내로 바뀐다. "여보, 당신 부대는 필리핀으로 출격했어요.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죠." 야노는 그제서야 필리핀에서 모두 말라리아에 걸린 채 적의 폭격으로 전사한 것을 떠올린다. 야노는 60년 동안이나 이승을 헤맸던 것이다. 잠시 후 할머니의 아들이 나타나 어머니를 업고 돌아간다. 여우 이야기 또다시 이모님의 괴담이 시작되었다. 간페이 신사의 신통한 능력을 찾아 귀신이나 동물이 씌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어느 날 인형같이 예쁜 여자아이가 찾아왔는데 여우가 씌웠다고 한다. 며칠간은 평범한 아이와 다를 바 없었는데 노을 무렵 숲에서 놀 때 쉰 목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신관(神官)들이 달려와 주문을 외고 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원래 일곱 날을 준비해야 하는 의식을 하루 만에 준비해서 여우와 맞대면을 했다. 그러나 영력이 강하다는 증조부마저 비명을 지르고 한 달을 일어나지 못했다. 이번 여우는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천 년 묵은 여우였다. 그날 이래 밥을 한 되씩 먹더니 온 집안에 짐승 냄새가 가득했다. 다음날에는 청주 독, 그 다음날에는 물독을 단숨에 들이켜고 집안을 서성댔다. 참기름 독까지 비운 날에 드디어 어른들은 여자아이의 손발을 묶어 부적을 붙여버리고 말았다. 이미 여우의 울음소리만 내던 여자아이는 이번엔 덮고 있던 이불을 뜯어 솜을 먹기 시작했고, 결국 비명소리에 모여든 가족들 앞에는 손이 묶인 채 자신의 손목까지 먹어치운 여자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 ▣ 발췌 번역 뼈의 유래 (p.117 ~ ) '나 있지, 널 많이 사랑해. 정말 좋아해.' 뼈가 되어버린 사치코는 예전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몇 번이나 말해줬어. 그 당시엔 그녀의 사랑의 속삭임에 대답해주지 못했었어.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는 순간 불행해진다고 믿었거든. 모든 불행이란 감정이입만 안 하면 별게 아니라고 믿지 않으면 고작 19년인 인생도 버티기 힘들었으니까. '이젠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네 곁을 떠나지 않을게. 영원히 사랑해. 정말 사랑해.' 유골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강가에 있는 버드나무 밑에서 푸른 가지들이 나를 감싸는 걸 느끼며 가까스로 대답했어. '사치코, 나 널 무지 좋아해. 정말 사랑해.' 빗방울이 내 고백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바꿔놓았지. 가슴 속에 꽉 차있던 그 무언가를 다 토해내듯,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어. 이야기를 마친 요시나가의 표정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말해야 좋을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친구로서 힘겨운 충고를 해야만 했다. "착각도 어지간히 해라, 요시나가. 그런 생각만 하다간 머리가 이상해질 거라고. 우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조심해라." 요시나가는 내 충고를 미소로 거둬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찻집에 들어온 거지들은 사치코의 부모님이 아니라니까. 돈도 안 내고 차 마시러 들어온 거지들이 자기네 가족의 유골을 버리고 간 게 틀림없어. 누가 봐도 그렇잖아?" 이 자식, 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는 요시나가 가슴께에 와인 코르크를 던졌다. "알겠다, 이 자식, 결혼했다는 것도 지어낸 얘기지?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산속에 이만한 저택을 짓고 사는 유유자적 독신 남에다 유능한 증권맨. 얼굴도 반반하겠다, 몸도 건강하겠다, 돈도 남아도니 뭐가 부족해서 그래?" 요시나가가 미친건지 아니면 제정신으로 나를 놀리는 건지 어찌 되었던 간에 오싹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슬슬 해가 지겠는걸." 요시나가는 노을로 한층 색이 짙어진 숲 속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제 돌아오는 모양이야. 어떻게 할래? 집사람을 만나고 갈래, 아니면 그냥 갈래?" 바로 근처에서 꿩이 울었다. 개나리 가지가 땅에 있는 이끼를 쓸어내듯 바람에 살랑이고 아직 딱딱하게 뭉친 백합의 봉우리와 석류풀더미가 흔들거렸다. "수레를 밀고 들어오거든. 중간에 나뭇가지도 줍고 풀도 뽑고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려." 나는 법랑으로 만든 의자에 마치 몸이 묶이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무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바람과 함께 볼레로의 멜로디가 실려 왔다. "아이를 갖고 싶었는데 거기까지 욕심낼 순 없었지." 마른 가지를 밟는 소리와 수레가 삐걱대는 소리가 다가온다. 박달나무 가지에 붙은 매미가 한껏 목청을 높인다. "사치코!" 요시나가는 들뜬 목소리로 영원히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