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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명 : 주머니 속의 가시 - 템플 그랜딘은 어떻게 자폐증을 극복하고 동물학자가 되었나
저   자 : 출판사 :
분   류 : 언   어 :
분   량 : 222 발행일 : 2004

▣ Short Summary

이 책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이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는가 하는 특수한 주제를 놓고 소설처럼 쓴 작품으로 작가의 딸인 자폐아 템플 그랜딘과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을 받았던 자신의 남편 딕에 대한 이야기를 주된 스토리로 전개하면서 중간 중간에 여러 가족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자폐증이라는 특수한 질병을 가진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 자체가 특수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조차 흔히 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지금 자폐아를 기르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외에 일반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직도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가족 안에만 감추어 두려는 비밀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자폐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작품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경험자로서 솔직하게 다루고 있고, 독자들에게 충분한 이야기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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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유스타시아 커틀러는 자폐증을 가진 템플 그랜딘을 50년대 보수적인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키운 어머니이자 자폐증이 갖는 많은 증상들을 의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한 사람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폐아를 둔 많은 어머니들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미국만이 아니라 캐나다, 홍콩, 영국 등지에서 저명한 사람이다. 템플 그랜딘은 콜로라도 주립 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리노이 대학에서 동물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랜딘은 《타임》지를 비롯한 미국의 유수 잡지의 지면을 장식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일반인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동물의 전체적인 복지 수준을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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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머리말
세 살이 되다
비틀린 나뭇가지처럼
템플의 어린 시절
두 세상이 시작되다
모든 것이 무너지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다
끝이 난 어린 시절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원인을 찾아서
유전
사람이 된다는 것
감사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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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요약

머리말
템플은 세 살이 되었을 때, 병원에서 정밀한 뇌 검사를 받았다. 뇌 검사 과정을 받으면서 템플은 무서운 공포를 체험해야 했다. 템플의 엄마는 키이츠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 과정을 보면서 느꼈던 고통을 묘사한다. 그 이후로 55년이 지난 뒤, 그런 과정이 과연 필요했었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템플은 자폐증을 극복했고 그런 이유로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템플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많은 자전적 이야기가 많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폐증을 가진 템플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템플이 태어난 후부터 청소년기까지 어떻게 자폐증을 발견하고 극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또한 자폐증을 가진 템플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템플의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템플의 어머니인 유스타시아 커틀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템플을 돌보는데 집중해야 했던 그녀는 다른 세 자녀에 대해서 미안해하며, 템플의 자폐증을 인정하지 못했던 그녀의 후회도 담겨 있다.

세 살이 되다
1947년 8월 29일, 템플이 태어난다. 템플은 보통 아기들처럼 자연분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유도분만을 통해 태어났다. 템플을 품안에 안기까지 시간이 자꾸 늦추어지는 동안에 유스타시아는 그녀가 언제쯤 자기만의 아이가 될 지 안타까워한다. 젖을 먹이고 싶었지만 유두가 젖에 파묻혀 도저히 먹일 수 없었다. 아기는 젖을 먹지 못해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아기를 보는 유스타시아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다행스럽게도 유두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다. 열흘이 지난 뒤 퇴원한 유스타시아는 아기가 지낼 보금자리를 만든다. 아기는 계속해서 젖을 먹을 수 없었다. 젖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분유를 먹여야 했다. 아기는 지나치게 조용했지만 유스타시아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기는 다른 아기들과는 달리 유스타시아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에게 구명 조끼를 입히고 얕은 바다에 데리고 가 수영을 했다. 그러다가 아기가 파도에 쓸려 자꾸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다행히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듣고 어떤 남자가 아기를 구해주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아기는 울지도 않고 어떤 반응도 없었다. 유스타시아는 둘째 아기를 낳고 템플은 21개월이 되었다. 템플을 데리고 다른 아기와 함께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데 유스타시아는 템플이 다른 아기와는 달리 그저 가만히 모래를 손가락 사이로 흐르게 할 뿐 아무런 장난을 칠 줄 모르는데 당황한다. 템플은 유스타시아의 눈을 마주칠 줄도 모르는데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유스타시아는 처음으로 템플과 함께 병원을 방문한다. 템플은 두 살 반이 되었는데도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졌지만 그 웃음은 조절이 되지 않는 듯했고 침을 흘리기까지 했다. 템플의 아버지 딕은 템플을 지체아라고 생각해서 분노했다. 게다가 딕은 템플을 시설에 보내려고 했다. 유스타시아는 딕에 대해서 의사와 상의한다. 어느 날 그녀는 피아노로 바하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템플이 곡을 따라했다. 그런 짧은 기쁨도 잠깐, 템플은 벽지를 찢고 장난감을 던지는 행동을 보였다.

비틀린 나뭇가지처럼
유스타시아는 템플을 보통 아이들처럼 스스로 자라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템플과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내아이를 성공적으로 돌본 경험이 있는 유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유모가 템플을 돌보기 시작한다. 유모가 템플을 돌본 지 6개월이 지났는데 템플은 유모가 보여주는 가르침에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말을 못했다. 템플은 세 살이 되었다. 의사는 템플에게 뇌파검사(EEG)를 해보자고 유스타시아에게 권한다. 템플은 열흘 동안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환경이 완전히 낯선데도 불구하고 그런 환경 변화에 이상하리만치 무심했다. 뇌파검사를 받을 때 템플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이 주홍빛이 될 정도였다. 뇌파검사를 통해 템플의 뇌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템플의 진료를 맡은 카루서 박사는 템플과 종이를 주고받는 장난을 한다. 그렇게 해서 카루서 박사는 템플이 반응을 보인다는 데에 안심을 준다. 그리고 카루서 박사는 템플의 청력을 검사하자고 한다. 템플은 여전히 말을 못했지만 청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카루서 박사는 템플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보라고 권하고 레이놀즈 부인이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작은 학교에 보내라고 한다. 레이놀즈 부인이 운영하는 학교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었는데 정신지체아와 다운 신드롬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딕은 템플이 지체아가 아니라는 데에 안심하고 있었으므로 유스타시아는 딕이 레이놀즈 부인의 학교에 가보지 못하게 했다. 집에서는 유모가 템플에게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유모는 정말 모두가 감탄할 만큼 온 힘을 기울여 템플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템플은 다른 아이들과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 줄도 모르고 정을 주고 받을 줄도 몰랐다. 템플로 인해 유스타시아는 딕과 사이가 나빠졌고 결혼 문제를 상담해주는 전문 상담가를 소개받는다. 템플은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고 딕은 계속해서 템플을 지체아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이어 박사는 템플이 자폐증이자 정신 분열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이 결과를 들은 딕은 분노로 굳어졌다. 결혼 문제를 상담해주던 박사는 딕과 유스타시아가 물과 기름이라 섞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스타시아는 템플이 자폐증에다 정신분열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스타시아는 절망 속에서 울지라도 템플을 받아들인 반면에 딕은 유스타시아의 말을 들으려하지도 않았다. 딕은 계속해서 템플을 시설에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딕은 템플을 한 지붕 아래에 두는 것을 허락했다. 유스타시아는 이제 너무나 다른 두 세계에 두 발을 각각 들여놓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템플이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던 그 당시 사회는 그런 개념을 이해할 줄도 모르고 그런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952년 6월 기적이 일어났다. 템플이 레이놀즈 부인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템플은 유치원에서 해야 하는 원칙을 이해했다. 그 때 템플은 아직 다섯 살이 채 되기 전이었다. 템플은 레이놀즈 부인의 권유에 따라 허클 부인이 운영하는 특수 유치원에 갔다. 그곳에서 템플은 주기도문과 템플이 가장 잘 하는 것 하나를 배우는데 성공한다. 그 뒤에 템플은 데드햄 컨트리 데이 스쿨에 입학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템플이 학교에서 상태가 나쁠 때는 집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템플은 그 학교에서 놀라우리만치 멋지게 잘 해냈다. 1953년 유스타시아는 세 번째 아기를 낳는다. 그녀는 아기를 두 자매에게 보여주었는데 아기가 자라는 동안 템플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반면에 다른 자매는 아기를 마치 자신이 어린 부모라도 되는 것처럼 돌보았다.

템플의 어린 시절
1954년과 1958년 사이에 템플은 학교에 아주 잘 적응했고 지역 사회에도 적응을 잘 했다. 어머니들끼리의 모임이 있어서 지역의 모든 아이들은 템플까지 포함하여 잘 자랄 수 있었다. 어느 아이도 예외로 두지 않고 모두 함께 자라날 수 있었다. 템플은 화를 잘 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템플은 자신의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고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템플은 다른 아이라면 1학년 때 배우는 읽기를 3학년이 되어서야 배우기 시작한다. 유스타시아는 템플을 직접 읽기를 가르친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읽기가 너무나 지루한 과정이었다고 회상하면서 과연 템플이 그 과정을 잘 거칠지 아니면 그 과정을 완전히 날려 버릴지 모르는 가운데 오즈의 마법사를 선택해서 읽어주기 시작한다. 템플은 다행히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그림을 좋아했다. 유스타시아는 템플과 한 문단 씩 번갈아 읽기를 시도했는데 템플은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하면서 읽기를 시작했다. 템플은 옷을 입는데 문제를 보였는데 그녀가 입고 싶어 하는 옷이 있고 입기 싫어하는 옷이 있었는데 옷을 입을 때는 항상 끝없이 불평을 했지만 어쨌든 옷을 입긴 했다. 그 가운데 따끔거리는 페티코트가 있었는데 템플은 그 옷을 입고 싶어하는 듯했다. 이유를 물어보자 가족들이 그 옷을 입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서 입는다고 대답했다. 템플이 사람들의 기대를 깨달은 것이다. 템플은 숙제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이 도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숙제에 호기심을 보였다. 게임을 할 때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싫어했고 사실 템플이 게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능숙해져야 할 부분이었다. 식사 예절만큼은 그녀가 지키지 않아 유스타시아로서는 아주 마음에 걸렸는데 학교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와 함께 식사하면서 보여주었던 보기 흉한 모습들이 영향을 미쳐서 템플은 식사 예절을 배우게 되었다. 템플은 져도 칭찬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운동 경기를 할 때 지켜야 하는 매너들을 지키지 않았다. 만일 운동 경기에서 지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플은 아버지 딕과 카드 놀이를 했는데 카드 놀이는 지켜야 할 매너가 없고 이기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템플이 좋아하는 놀이였다. 딕은 템플에게 아주 인색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템플은 바느질에 재능이 있어서 마을의 디자이너가 그녀와 함께 일을 하면서 그녀가 한 일에 대해 보수를 주곤 했다. 템플의 어린 시절은 안정적이었다.

두 세상이 시작되다
템플은 일곱 살이 되었다. 그 무렵 유스타시아는 노래를 시작한다. 템플은 잘 자라고 있었다. 유스타시아는 피아노로 팝송의 코드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녀는 비밥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라디오 스타인 레이 도레이로부터 팝송을 부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팝송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유스타시아는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시간만 나면 그녀는 재즈를 들었다. 템플은 웜퍼턱 갱이라는 그룹에 들어간다. 웜퍼턱 갱이란 그 지역의 아이들의 모임으로 템플도 거기에 일원이 된 것이다. 유스타시아는 남편 딕에게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든 밤에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딕은 심하게 반대한다. 그녀는 지역의 빈센트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했는데 어떤 남자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그녀는 마치 프랑스의 B급 필름 느와르에 등장하는 것 같아 흥분한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를 채용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템플과 여동생도 그녀가 서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보스턴 글로브 지의 기자가 유스타시아를 인터뷰하고 유스타시아는 신문에 크게 보도된다. 그 이후 케임브리지에 있는 포이츠 씨어터(시인들의 극장)에서 그녀에게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녀는 흔쾌히 일원이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배우가 되어 공연을 하고 일을 하는 동안 다시 임신한다. 포이츠 씨어터는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손수 신문에 실을 보도문을 작성해야 했는데 보스턴 헤럴드 지의 편집자인 아놀드 부인이 어떻게 보도문을 작성해야 하는 지에 대해 가르쳐준다. 1955년 6월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 후 그녀는 몰리에르의 원작을 번역한 작품에 등장하는 셀리멘느 역을 맡는다. 유모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집안에는 두 명의 아일랜드 아가씨들이 아이들을 돌봐주러 들어온다. 아이들은 아일랜드 아가씨들을 좋아한다. 템플의 여동생은 연극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학교에서 공연한 연극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템플은 여동생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유머라는 것이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템플도 연기를 하고 싶어 해서 여동생의 연극에 함께 참여한다. 템플이 사라졌을 때 유스타시아는 남편 딕과 잠깐 동안 화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딕은 일자리를 잃고 그 뒤 점점 감정적으로 위험한 걸음을 걸어가게 된다.

모든 것이 무너지다
딕은 다니던 부동산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다시 일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부동산 회사를 차릴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템플이 그녀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런 걱정은 분노로 이어졌다. 딕은 이층의 침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족 모두는 그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1958년 여름, 모든 것이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를 즐겼다. 그러나 그건 유스타시아의 착각이었다. 유스타시아는 친구와 함께 며칠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그 동안 딕이 템플을 토요일 밤에 열렸던 댄스파티에 보내지 않고 방에 머물도록 하고 있었다. 템플을 자신의 생각에 가장 좋은 옷으로 잘 차려입고 언제나 그렇듯이 댄스가 열리는 카지노로 가고 있었다. 불현듯 템플은 카지노 창문을 통해 공포에 가득한 작은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딕이 갑자기 나타나 템플을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유스타시아가 딕에게 템플이 그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템플이 과장한 거라고 말했고 템플은 이웃집으로 갔다. 템플이 자신감을 더 갖추고 균형을 잡아갈수록 딕은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집착했다. 학교에서 템플을 잘 가르쳐준 데 대한 보답으로 유스타시아는 학교 설명회를 여는 데 앞장섰다. 학교 설명회에서 그녀는 연극을 올렸다. 그것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딕은 그녀에게 화를 냈다. 유스타시아는 엘리어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가사 역할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혼을 생각했다. 만일 그녀가 이혼한다면 딕의 영혼이 망가질 것인가? 그리고 네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열 세 살이 된 템플은 데드햄 컨트리 데이 스쿨을 졸업하고 더 크고 소녀들만 있는 학교에 입학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화가 나 있던 딕은 신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종교란 무의미하다고 증명하려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딕은 유스타시아가 그의 주장에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자 기운을 잃었다. 템플과 딕은 점점 사이가 나빠져 크게 부딪치기도 했다. 유스타시아는 이혼을 바라고 있었지만 상담가는 딕이 자녀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녀는 나빠진 목으로 연극을 계속하다가 결국 성대를 망가뜨려서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다
1960년 9월, 유스타시아는 템플의 절친한 친구인 리만의 엄마와 함께 청소년 연합에서 일한다. 그리고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길고 긴 조사를 시작한다.
첫 번째 해야 할 임무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지체 현상에 대해서 의학 수업을 받는 것이었고, 두 번째 임무는 지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병원에 대한 것이었다. 현장 임무는 몬슨 주립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몬슨 주립 병원은 모든 종류의 불완전한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몬슨 주립 병원에서 유스타시아가 처음 만난 아이들은 몽골로이드(다운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였고 그 다음에 만난 사람들은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수간호사는 설명을 했다. 그녀는 이들에게 침대를 정리하고 옷을 다리고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등의 일을 시켰으며 더 심각한 지체아들에게는 새 매트리스를 가득 채울 말털을 정리하는 일을 시켰다. 이들은 너무나 지체가 심해서 처음에는 옷조차 입을 줄을 몰랐다. 이 병원에 온 이후로 수간호사가 이들에게 일을 할 수 있게 돕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이들은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사람다운 모습을 점점 갖추게 되었다. WGBH 방송국은 유스타시아가 한 조사에 맞추어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그곳에서 유스타시아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이 왜곡된 형체를 가진 아기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이후 그녀는 “정신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을 그 당시 사회는 특수 학교에 보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만 수용하고 있는 특수 병동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이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을 거부했다. 그 다음 그녀는 시립 소년 법원과 소년 유치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자메이카 플레인 소년 유치장에서 그녀는 8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자폐증과 연결시켜 생각한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잘 부수고 파괴하며 학교에서도 어떠한 연결 고리를 만들지 못하면 도망을 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엠마 펜들턴 브래들리 병원으로 그 곳은 아주 자폐증이 심한 아이들이 있었다.

끝이 난 어린 시절
템플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처럼 여름 캠프에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유스타시아는 그녀를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캠프에 보냈다. 그러나 3일 뒤 템플이 열이 나고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딕은 화가 몹시 나서 템플이 갔던 여름 캠프를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유스타시아는 남편을 말린다. 템플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결코 받아들인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에게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스타시아는 사랑이란 무언가를 자라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템플은 사랑에 대한 설명을 이해한 것 같았지만 나중에 자신이 다른 소녀와 함께 선생님의 정원에 유리병으로 가득 찬 쓰레기통을 던졌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설명한다. 1961년 가을, 템플은 열네 살이 된다. 템플이 힘든 시간을 거칠 때마다 식구들 역시 힘들어야만 했다. 키가 완전히 커버렸기 때문에 일단 템플이 화가 나면 말릴 수도 없고 겉잡을 수도 없었다. 엄마가 어린 아이처럼 야단을 치면 사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야단에 순종했다. 그러나 유스타시아는 템플이 성장한 것을 보며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61년 12월, 템플은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서 쫓겨난다. 화가 난 유스타시아는 교육 위원회를 찾아갔지만 거기에는 예전에 템플을 돌봐주었던 비엔나 출신의 의사가 더 이상 있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녀는 인생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을 만큼 불쾌한 기억을 경험한다.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발견했던 조그만 섬에 있는 학교로 템플을 데려간다. 거기서 템플은 평생 동안 과학을 사랑하게 해준 좋은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딕은 다시 많은 돈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자 딱딱하게 굳어졌다.
비엔나 출신의 의사는 그 동안 딕에게 편지를 받아 왔는데 단 한 번도 그 내용에 대해 유스타시아에게 말한 적이 없어서 그녀도 내용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딕은 아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결국 1962년 8월에 그녀는 딕과 이혼했다. 그리고 네 자녀에 대한 부양권까지 모두 얻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템플은 햄프셔 컨트리 스쿨에서 안전하고 행복했다. 다른 형제들도 무사하고 나도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돈이 부족하다보니 집에서 함께 일했던 아일랜드 아가씨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유스타시아는 전액 장학금을 받기로 약속을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한다. 1965년 그녀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벤 커틀러와 재혼한다. 벤은 템플을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사랑한다. 유스타시아는 강의를 하고 연극을 가르친다. 템플은 대학교를 4백 명 가운데 2등으로 졸업한다. 딕도 졸업식에 참여했는데 자랑스러워했다.
유스타시아는 그 동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성대가 다시 나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느 호텔의 무대에서 그녀는 불어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자폐증을 극복해서 성공한 케이스로 유스타시아와 템플은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녀는 캐나다, 미국, 홍콩, 영국 등지에서 자폐증에 대해서 강연을 한다.

원인을 찾아서
유스타시아는 자폐증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공부하면서 전문가들을 만나 자폐증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자폐증은 뇌의 손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정신적인 질병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감각 중추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다. 자페증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한 분야에 출중한 실력을 보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들은 많은 엄마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고 그럴 때마다 유스타시아는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 주어야 할 지 종종 고민한다.

유전
딕의 할아버지이자 템플의 증조부인 존 리빙스턴 그랜딘과 그 형제는 원유를 추출하는 일을 했는데 참을성이 없었던 그는 록펠러를 기다리다가 그만 너무 오랜 기다림에 성질이 나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랜딘 형제는 모든 일을 정리 정돈하는데 탁월했다. 그들은 농부들이 일군 농산물을 강을 따라 배로 나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부자가 된 그들은 보스턴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보스턴은 그들을 그다지 환영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유스타시아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발견해서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돈을 버는 데에는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나침반 비슷한 기구는 나중에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였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사람이 된다는 것
유스타시아는 과거를 회상한다. 자폐증에 관한 수많은 이론들의 홍수 속에서 그런 질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던 시절에 보여주었던 카루서 박사의 따뜻한 배려를 생각하고 고맙게 여긴다. 여자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는데 유연한 반면에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건 서로 간의 아주 큰 차이이다. 자폐아를 가진 아버지는 엄마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아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혼한 이후에 보여준 바깥 사회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템플을 관대하게 받아들여준 나머지 자녀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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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번역

(pp.138 ~ 140)
1961년 12월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일주일 전이었고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던 템플은 창백해진 채 식탁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났니?” 내가 물었다.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셨어. 교장 선생님은 내가 우리 사회의 위협이라고 말했어.”
“뭐라고!”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나도 학교로 돌아오지 마라.’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었어.”
“믿지를 못하겠군!”
“교장 선생님은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았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어. 그는 그냥 내 전화를 끊었어.”
그랬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는 템플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고, 특별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이 템플을 맡고 있는 비엔나 출신의 의사가 학교 교육 위원회에 있었다. 어째서 그 교장 선생님은 내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의논을 해 볼 수도 있고 템플과 학교 모두에게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가 템플을 그저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단지 어린 아이일 뿐이 아닌가! 화를 내면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 조금의 배려도 없고, 경고도 없었단 말인가.
나는 템플과 내가 데드햄 컨트리 데이 스쿨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은 덕분에 성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번 학교도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며 성깔이 있고 늘 마찰을 일으키는 템플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십일 년 전 템플이 세 살이었을 때 카루서 박사와 했던 것 같이 상담을 하려고 베이커 전문 상담 센터에 예약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카루서 박사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고 상담을 하려고 예약한 장소는 의사의 사무실이 아니라 그냥 일반 병원의 상담실이었다.
상담소의 창문은 철망이 쳐져 있었고 창문에 드리운 블라인드의 촘촘한 가로장 사이로 겨울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아래 도로에서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이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방은 연푸른색으로 칠이 되어 있었는데 흔히 병원 직원들이 정신병적 녹색이라고 하는 색조로 그 색깔은 정신병자, 우울증 환자, 그리고 나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리킨 대로 따로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았는데 내 앞에는 탁자가 있었고 그 뒤에는 나를 마주본 채 놓여 있는 의자들이 있었다. 전에 진료를 받을 때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두 의사가 두 명의 인턴과 템플의 기록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는 사회복지사를 데리고 들어와 긴 탁자에 앉았다. 템플을 진료하던 의사는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마치 감옥에서 가석방 담당자 앞에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을 받았다.
“템플이 학교에서 어느 학생에게 책을 던졌어요. 그 학생의 어머니가 교장 선생님에게 무척 화를 냈고 교장 선생님은 템플을 퇴학시킨 거지요.”
겉보기에는 모든 면으로 담담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템플을 그렇게 다룬 교장 선생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교장 선생으로서 그리고 박애주의자로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게 먼저 말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 그는 자기 스스로 책임에서 물러나 이탈하여 아이를 퇴학시키고 말았다.
템플이 새 학교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이유로 템플의 분노가 위험에 달했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템플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장난이었을지 모르지만, 템플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작전 지대였고 무기라고 해봤자 분노밖에는 없었다. 그들은 템플이 화를 내는 것을 즐겼고 결국에는 발길질을 하고 말았다. 템플은 분노가 폭발했고 쫓겨났다. 학교 전체를 놓고 보면 공개적인 망신이었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얼마나 멋진 승리를 안겨주었는가! 나는 교장 선생이 템플을 받아들여서 학교 교육 위원회에 있는 의사에게 신임을 얻고 싶어 한 건 아닐까 하는 끈질긴 의심과 싸웠다. 이제 그는 템플을 내보내려는 핑계를 대고 싶어 한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나도 학교에 돌아오지 마라.”
다음 날, 나는 교육 위원회에 있는 임원에게 이야기를 전달 받았을 때, 너무나 저자세로 템플이 얼마나 다루기 힘들고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참아 왔는지 들었다. “결론은 템플의 자폐증이 문제였군요.” 그러나 내가 템플을 맡았던 비엔나 출신의 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가 낙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왜 여기 상담에 참여하지 못하는가?
탁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두 의사가 서로 몸을 기울여 쉬쉬하며 속삭였다. “자폐증. 사춘기.” 나는 그 다음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 이해한 척 했다. 나 역시 중죄인이었고 가석방 위원회는 템플과 나 모두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의견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누울 자리를 마련해 왔다. 이제 내가 직접 누워도 좋을까? 맞다. 나는 직접 누울 것이다. 그러나 템플을 어떻게 해야 할까? 템플도 거기에 누워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한 사람이 나를 보면서 연필로 자신의 치아를 톡톡 쳤다.
“무슨 해결책을 내놓을 건가요?” 내가 물었다.
“그렇게 적절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