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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명 : 콩나무 오르기 - 가장 사랑받는 동화 속에 숨겨진 영적 메시지
저   자 : 출판사 :
분   류 : 언   어 :
분   량 : 134 발행일 : 2007

▣ Short Summary

동화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내쫓는 현실에서,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구전되어온 깊이 있는 가르침과 지혜를 잊고 살고 있다.

저자는 동화 속에 담겨진 영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춰, 각각의 발달 단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리고 우리가 방심하면 빠지기 쉬운 함정과 위험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동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화 작가들은 이야기 속에 우리가 우리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영적인 지침, 깊이 있는 지혜, 식견을 담아두었고, 그것을 독자들이 파악하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

․ 영적 성장의 일곱 가지 단계에 대해 배우고, 자신의 영적 성장에 적용시킬 수 있다.
․ 각각의 동화 속에 챠크라 체계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볼 수 있다.
․ 동화 속에서 사용되는 상징을 이해할 수 있다.
․ 당신의 영적 여행 중 빠지기 쉬운 곳을 알아볼 수 있다.
․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놓치기 쉬운 깊이 있는 진실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동화에 담긴 내용을 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신데렐라, 잭과 콩나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푸른 수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돼지치기 소년, 헨젤과 그레텔에 대해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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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앤 가드는 화가, 작가, 레이키 수련자, 변형 상담자이자 연사이다. 그녀는 Create Yourself Art Workshops를 창설하고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연결에 변형의 힘이 미치는 힘에 대해 깊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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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머리말
서문
제 1장: 동화의 약사
제 2장: 인간 여행의 일곱 단계
제 3장: 신데렐라
제 4장: 잭과 콩나물
제 5장: 헨젤과 그레텔
제 6장: 빨간 모자
제 7장: 푸른 수염
제 8장: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제 9장: 돼지치기 소년
제10장: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후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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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번역

이야기의 신화적 의미 (p.64~p.66)

12세기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단테(Dante)처럼, 헨젤과 그레텔도 어두운 숲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홀로 남겨져 두려움에 떨며, 육체적인/영적인 양식을 갈망한다. 배신을 당하면서, 여행의 첫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우리 중 대부분도 헨젤과 그레텔처럼 가족에게 속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그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낀 어려운 시기를 겪었을 것이다. 그때는 세상이 어둡고 절망으로 가득 차, 마치 숲 속에서 길을 잃어 나갈 길을 찾지 못할 때처럼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헨젤과 그레텔에게 그랬던 것처럼, 삶을 변화시키고 더욱 의미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태양이 깊은 숲 속에는 비치지 않기 때문에 숲은 여성적인 요인, 의식불명을 의미한다. 즉, 태양, 남성적인 요인이 차단됨을 의미하고, 그렇기에 아이들은 잠재의식의 영역에 갇히게 된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을 해결해야만 한다. 우리는 용납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겨왔다. 만약 우리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전해 질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행동을 많이 한다 해도, 이생에서 좋은 인연을 가져다 줄 뿐, 우리의 영적 성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적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챠크라의 두 가지 원형 모두 이 동화와 관련되어 있다. 어머니 자연이 숲의 형태로 존재하고, 희생자인 아이들은 잔혹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

헨젤이라는 이름은 영어에서의 존 브라운과 같이 독일 동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즉, 주인공 소년은 그저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레텔도 마찬가지이다. 마가렛(Margaret), 마가리타(Margarita)에서 유래된 그레텔, 게탈, 그레탈, 그레헨이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결국 동화 속에는 신기한 능력이나 힘을 지닌 특별한 아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영적 성장의 길은 구하는 자 모두에게 열려있다. 부유하고, 아름답고, 영리하고, 건장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단지 영적 성장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된다.

여성의 개념은 부모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중 버전에서 첨가되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버리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우는 소리에 며칠 밤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부모는 이런 마음을 먹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나온 버전에서 여성의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이야기의 소재의 부족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영적인 성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나무꾼은 하찮은 직업이고, 보수도 넉넉하지 못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찮았지만 아이들은 고귀하기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 19:24)

원하는 세상의 쾌락을 모두 즐기며 안락하게 살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가난은 다른 영역에서의 부유함을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적인 성장 외에는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길이 편할 수밖에 없다.

빵이 없다는 내용은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와인과 같이 빵은 변형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재료를 모두 모아 섞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모든 면을 하나로 합치는 것과 같다. 그러고 나서 주물러서 반죽한다. 이 과정은 우리가 성장하여 더욱 커지고, 현명해지고, 관대해짐을 의미한다. 마지막 굽는 과정에서는 불이라는 요소에 의해 반죽이 변형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빵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찬식 때 죄 사함의 근원이 되는 빵을 쪼개서 함께 나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6-17)

우리처럼 아이들에게도 처음에는 뚜렷한 속죄함의 근원이 없었다.

그림의 처음 버전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어머니는 생모였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버리는 잔혹함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서 계모를 등장시켰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의 요구에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모습은 하위자아의 요구에 쉽게 무너지는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한번 무너지면, 두 번째는 거부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초콜릿 한 조각만 먹겠다고 생각하고 결국에는 다 먹어치운 적이 있지 않은가?)

헨젤과 그레텔이 부모와 함께 숲으로 떠나는 모습은 영적 여행의 두 번째 단계인 추구 단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헨젤이 길에 조약돌을 떨어뜨린다. 나중에 조약돌을 다시 주울 때는, 조약돌이 은과 같이 빛났다고 묘사되어 있다. 조약돌에는 마치 예수를 팔아넘길 때 받은 은화 30개의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배신, 그들이 순결함을 잃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은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은을 주조하여 동전을 제작함과 함께 순결함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은은 또한 마술, 신비와 관련이 있다. 결국 은색 조약돌이 아이들은 신비한 길로 이끈다.

처음에 헨젤이 뒤에서 고양이를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비둘기를 봤다고 말한다. 왜 고양이와 비둘기일까? 어쩌면 고양이는 마녀와 친근한 존재로 알려져 있고, 비둘기는 성경과 같이 사랑,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 1:32)

비둘기는 또한 정죄된 영혼을 상징한다. 즉, 헨젤은 그의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처음에 헨젤이 무의식의 세계/숲 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길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한 무의식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결단과 결의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꼭 하겠다고 우리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한 것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순결함, 자존감은 우리의 자아에 의해 파괴된다. 예를 들어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두 주가 지나면 이틀에 한번씩, 세주가 지나면 일주일에 20분 정도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결심은 까맣게 잊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