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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명 : 행복의 잃어버린 기술 - 회의론자들을 위한 행복의 지혜서
저   자 : 출판사 :
분   류 : 언   어 :
분   량 : 239 발행일 : 2007

▣ Short Summary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삶의 가치에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의 내적인 삶은 상당부분 우리의 습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습관을 훈련시키고 변화시킴으로써, 다른 표현으로 내적인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평정과 고요함을 갖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고대의 생각이지만, 이 생각들은 오늘날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 행복해지는 요령은 얼마나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날의 삶에 치명적일 정도로 연관이 되어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런 기술들을 연습함으로써 얻게 되는 내적인 삶의 과정이 어떻게 개인의 정신을 형성하게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매우 지혜로운 책으로, 행복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아름다운 책이다.”
- 로드 레야드 교수, 웰빙 프로그램, 경제실적 중앙위, 정치학과 경제학 런던 스쿨.

“나는 한 사람도 이런 교감 있고 지성이 풍부한 책을 읽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대부분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불행을 겪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한 삶의 방식을 따른다면 행복은 당신 것이다.”
- 닥터 앤소니 셀던, 윌링스턴 대학교의 교수.

“ 이 책은 중요하고 독창적인 책이다. 토니 윌킨슨은 건강한 경험들과 대단한 지성 그리고 호기심에 찬 마음을 통해서 고통스럽고 복잡한 현재의 우리의 영성에 접근하고 있다. 자기인식에 관심이 있는 누구에게나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 맬컴 스턴, 심리 치료학자, 작자, 채널 4의 사회자이자 얼터너티브즈의 공동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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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토니 윌킨슨(작가 소개)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공무원으로서 그리고 후에는 투자 은행에서 자기의 경력을 펼치는 동안 그는 명상을 연습하였고, 아이키도(일본의 합기도)의 학생이 되었으며 동양의 종교에 대해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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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제 1부. 행복과 내적인 삶
1장: 생각해봐야 할 것
2장: 내적인 삶의 소개
3장: 내적인 삶과 행복
4장: 습관, 변화 그리고 습관의 근원
5장: 내적인 삶의 동물학적인 면모
6장: 기본적인 기술들

제 2부. 행복의 기술
7장: 유념해야할 기술들
8장: 유념해야할 연습
9장: 박애의 기술
10장: 박애 연습
11장: 이야기의 기술
12장: 이야기 연습
13장: 이야기 기술의 적용- 사물과 자신
14장: 기술의 활용
15장: 활용의 연습
16장: 기쁨의 기술
17장: 연습을 즐기기

제 3부. 연결, 성찰, 결론
18장: 영성, 종교 그리고 과학
19장: 죽음과 죽어 가는 것에 대한 생각들
20장: 삶의 방식

첨부: 거인의 어깨위에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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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번역

9장. 자비의 기술
자비라는 말 이면에는 몇 가지 개념들로 살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진 것들을 포함해 본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동정, 친절, 사랑, 관용, 우정 등이 있겠다.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가 어떤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초자연적인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에도 연습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그렇다, 당신이 추측한대로 위에 언급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기술들은 내적 삶의 해롭고도 가장 어려운 습관들을 약화시키는데, 이런 습관들은 소위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정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노여움이나 증오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에 휩싸인 사람이 동시에 행복과 평안을 맛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비의 기술은 우리의 이런 문제점을 지목해준다.
만약 당신이 행복과 노여움이 양립할 수 없다는 데 대해 확신할 수 없다면 이것을 한번 시도해 보라. 즐거운 경험은 아닐지라도 명료하게 해줄 것이다. 당신이 너무나 화가 났던 상황을 떠올려보자. 매우 대단하거나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 아마 그것은 실상 꽤나 사소한 것이었을지 모르다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계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시 멈추어서 그때의 분노를 가능한 충만하게 기억하라. 가시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때의 상황들을 그려보라. 그때의 색감 그때의 소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상기해 보라.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당신의 기분은 정확히 어땠으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아마도 당신의 생각은 상처로 가득 찼을 것이며, 그 분한 상황들을 어떻게 되돌려 놓아야 할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만약에”라는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이 올 줄 알았다면, 만약 그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좀 더 생각을 해 주었더라면, 만약 당신이 그들을 그저 무시 할 수 있었더라면, 만약 당신이 옳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만약 당신이 그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기타 등등. 그 다음에 당신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때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고 절제할 수 없을 지경에 놓이게 된다. 아마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가슴에서 욱하고 솟구치는 무언가를 느끼며 눈물을 흘리거나 격노를 하고 또한 몸은 팽팽하게 긴장하며 심지어는 떨리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해내라. 이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신이 뭐라고 말했으며 뭐라고 말하길 원했는지 말이다. 당신은 거칠어 졌는가? 폭력의 판타지를 감추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마도? 당신은 어떻게 하기를 원했는가?
충분하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난 당신이 나의 요점을 생생하게 느끼길 원했다.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아직 그 기분에 매여 있는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 뱉어라 그리고 약간 걸은 후에 이번에는 당신이 가장 행복하고 평온했었던 때를 기억해보라. 시간을 가지고 당신의 분노를 가라 앉혀라 그리고 이것은 환상일 뿐이며 당신이 일부러 초청한 것일 뿐임을 기억하라. 비록 당신의 분노가 누군가의 터무니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에서 기인한 충분히 정당한 감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사실, 당신의 상황이 정당성이 있을수록 더 분노가 느껴지는데 이것은 분노가 더 강력해지며 어떤 것에도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겪게 한 상대방에게 상당한 불만을 느끼게 된다. 그 상황에서는 당신은 어떠한 내적 평안도 가질 수 없다. 이것은 당신이 그런 ‘분노’를 참아야 한다는 것, 또는 당신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분노와 내적인 평안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즉, 분노와 행복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자비의 기술은 종종 덕으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비의 기술을 덕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기술들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타고난 특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마도 그것을 소유해야만 한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면 도덕적인 낙오자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의 외관상 자비의 기술들은 모든 도덕적인 전통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한다. 세상에 어떤 종교적 전통도 그 종교 안에서 권유되는 도덕적인 기술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이나 자비, 친절, 낯선 이들에 대한 이해, 관용, 자비 심지어는 이웃이나 친구를 존경하는 것 등을 부르짖든 말든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극히 중대한 메시지이다.
분노와 미움의 그 영혼을 좀 먹는 영향력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서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당신이 자비의 특성이 믿기 힘든 실용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든 말든 우리는 여기서 연습하고 또한 연습해야만 하는 자비의 기술을 이용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그러한 기술들이 세워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자비의 기술들은 논쟁의 여지를 남기는데 이는 그것들이 때때로 주제넘은 현대의 인식이나 자기표현 등 기묘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아마도 공격적인 사람들에 대한 초대장, 희생자로서의 현 삶에 대한 수용, 짓밟혀도 잠자코 있는 흙털개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비록 많은 종교가 공격을 공격으로 처신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지만, (예를 들자면 “다른 뺨을 내 놓는다”) 오늘날에는 정당한 분노에 대한 언어나 신체적인 표현은 우리 자신에게 좋을 뿐만이 아니라 자연적이고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것은 사실이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맨이 명명한 “수경성 이론”에 근거하면 감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표출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 억압한 상태로 놔둔다면 그것은 폭발하여 더 큰 해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매일의 믿음가운데서 여전히 잔재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나 타인이 잘못되게 만드는 것들에 저항하고 복수하며 결국은 악인에 대항하는 것은 소설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이는 성숙과 강함에 대한 하나의 신호가 된다. 파괴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점들에 내재하는 어떤 혼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보통 내적인 삶과 외부의 활동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에서 시작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