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명 : 전국시대 그 게임의 현장
저   자 : 한단 출판사 : 섬서사범대학출판사
분   류 : 언   어 : 중국어
분   량 : 발행일 : 2009년10월

▣ Short Summary
-만약 당신이 학생이라면, 전국시대를 읽고 소진(蘇秦)을 보라.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늦도록 공부하다보면 피곤하고, 졸리고, 짜증도 날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 머리를 들보에 매달고, 송곳으로 자신의 다리를 찔러댈 것이다.
학교 성적이 올라감에도 소진의 머리는 점점 적어지고, 걸음도 점점 불안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바로 두 글자, 이상 때문이었다.
남자가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지불해야 할까?
-만약 당신이 이미 직장인이라면, 전국시대를 읽고 장의(張儀)를 보라.
장의, 위나라 평민이었으나 그의 언변은 가히 극치에 다달았다.
초나라에서 무일푼에서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데 단지 몇 마디면 충분했다.
진나라에서 평민백성에서 승상의 자리에 오르는데 단지 몇 마디면 충분했다.
부귀에서 명예까지 장의는 그저 몇 마디만 했을 뿐이다.
▣ 발췌번역
P147~ 제6장 말주변 하나로 살 길을 찾다
조물주는 공평하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부속품은 모두 같다. 두 손으로 노동을 하고 머리로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러한 사람도 있다. 두 손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매일 놀면서 재미나게 보낸다.
그 시대에는 이러한 사람을 종횡가(縱橫家)라로 불렀다. 그들의 신체 구조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바로 세치 혀이다.
혀만 있으면 어찌 공명부귀가 쌓이지 않겠는가?
설사 천하를 종횡무진 하더라도 느껴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내 밥그릇을 건드렸나
감룡(甘龙), 두지(杜摯), 공자건(公子虔)등 용 복장을 한 사람들은 무대에 두 번 출현한다. 첫 번째는 박해를 받는 역할이고, 두 번째는 주인공을 대신해 수습하는 역할이다. 주인공이 무대를 떠나면 이런 사람들도 하나 둘씩 역사의 긴 강에서 사라진다.
기원 전 333년, 진나라에 재임한 대량조는 위나라 사람 공손연(公孫衍)이었다. 그의 전임 대량조는 상앙(商鞅)선생이었는데 그는 일찍이 이 자리에 있을 때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거대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놀라운 기적을 이룬 상앙 선생을 공손연은 과연 뛰어 넘을 수 있을까?
공손연 또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은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교가 가능할까? 공손연은 상앙 선생이 행운이었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 시대에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공손연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주위에는 비교 대상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종종 ‘주유가 있는데 제갈량이 또 필요한가?’라는 말로 한탄을 했다.
만약 공손연을 주유에 비유한다면 제갈량의 사람으로 장의 뽑을 수 있다.
전설 속의 장의는 귀곡(鬼谷)의 제자로 귀곡 선생의 4대 제자 중 한명이다. 그는 졸업 후에 초나라 귀족들과 어울려서 주로 먹고 마시며 지냈다. 게다가 인품 또한 좋지 않았다. 한번은 초나라 승상이 연회를 베풀었다. 주인은 성 15개의 가치와 맞먹는 화씨벽을 들고 나와 손님들에게 돌려보게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보물이 돌고 돌다가 없어져 버렸다. 모두들 일제히 장의가 훔쳐갔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난한데다가 성품 또한 단정치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승상은 보물을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장의를 묶어 곤장 몇 백대를 치게 했다. 장의는 이를 악물고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참았다. 물론 자신이 물건을 훔쳤다고 시인하지도 않았다. 승상은 보아하니 방법도 없고 사람을 송장으로 만들 것도 아니기에 장의를 풀어 주었다.
장의의 상처가 너무 심해 사람들이 그를 들고 돌아갔는데 이 모습을 본 부인은 깜짝 놀랐다. “나갈 때는 신바람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는데 어떻게 돌아올 때는 반송장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먹고 살다가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먹어버리겠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부인이 원망하며 말했다. “만약에 공부하러 가지 않고, 로비하러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굴욕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장의는 드디어 입을 열어 말을 했다. 그는 파랗게 질린 아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빨리! 내 혀가 아직 있소?”
아내는 웃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농담할 기력이 남았는지. 아내는 장의의 입을 자세히 살폈다. 장의는 어찌나 맞았던지 흐물흐물 대는 배추가 되었다. 그러나 몸에 난 상처와 선명한 대비를 보이며 장의의 입은 처음처럼 완벽하게 보호되었다. 아내가 대답했다. “혀는 잘 있어요.”
장의는 긴 한숨을 쉬었다. 혀만 괜찮으면 됐어!
나중에 사실이 증명하지만, 장의는 종종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렸으나 승상이 잃어버린 화씨벽을 결코 훔치지 않았다. 한바탕 매를 맞을 때 장의는 이를 악 물로 견디면서도 이 울분을 삼키지 않았다. 결국 승상 한 사람이 한 짓을 초나라 전체가 대가를 치러야했다. 장의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생각했다. 복수하리라, 복수하리라. 그의 목표는 초나라 전체였고 자신이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독보적인 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손연도 장의의 세치 혀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다. 이 사람의 입은 어떻게 자란 것일까? 말솜씨가 유창하다는 말로는 장의의 언변을 수식할 수 없다. 죽어서도 말을 한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 입을 한 번 벌리면 마치 만물의 영기를 모을 수 있을 것 같고, 어떠한 사람도 이 입에서는 가능해 보인다.
첫 번째로 그의 입이 요리한 사람은 제나라의 새로운 군주였고, 바로 이어 장의는 조정에서 이분자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장의는 대량조 공손연을 내쫓았고 다음 목표로 진진(陳軫)을 삼았다. 장의는 동행자는 원수라는 진리를 신봉했다. 진나라 조정에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적이었다. 나중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줄이기 위해서 적은 빨리 제거할수록 좋았다.
장의는 이렇게 들음직한 말들로 진나라 혜문왕(惠文王)을 움직였다. 공손연을 어떻게 내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기》에 장의가 진진을 어떻게 밀어냈는지 적혀있다. 그 내용을 보고나면 그에 대한 내용이 허풍이 아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장의에 입에서 그 극치를 보여주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당시 진진은 진나라의 외교사신 이었다. 그래서 주로 진나라와 초나라를 왕래했다. 장의는 진 혜문왕 앞에서 진진이 빈번하게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왕래하면서 마땅히 국가의 외교적 업무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나 두 사라의 관계는 전혀 변하지 기색이 없고 초나라는 진나라에 매우 우호적이지 않다며 진진을 고소했다. 공교롭게도 이와 반대로 초나라가 진진에게는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진진은 공금으로 사적인 일을 처리했고, 게다가 진진은 이미 초나라에 몸을 의지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진 혜문왕은 장의의 말만 듣지 않았다. 그래서 진진을 찾아 직접 장의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진진에게 말했다. “내가 듣자하니 네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고 갈 생각이라던데, 이것이 사실이냐?”
진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인정했다.
“장의가 과연 나를 속이지 않았군.”라고 진 혜문왕이 말하자 진진이 대답했다.
“이는 장의만 아는 사실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아는 일입니다. 예전에 오자서(伍子胥)가 그의 군주에게 충심을 다해 천하의 군주들이 그를 신하로 맞이하려고 쟁탈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긋하여 천하의 부모들은 이런 아들을 원했습니다. 만약 제가 자기의 군주에게 충심을 다하지 않는다면 초나라는 무엇으로 내가 충신이라고 여기겠습니까? 저는 군주에게 충실했는데 버림을 당해야 하니 초나라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갑니까?”
위에 내용을 보니 그저 탄식이 나온다. 이 해에 군주의 자리는 쉽지 않았구나! 이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빙빙 돌다가는 언젠가 어지러워 쓰러질 것이다. 상앙의 패턴에 의하면 이러한 로비 인사는 마땅히 농사 지러 가야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달랐다. 진나라는 인재가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장의의 한판승이었다. 진나라에 온 그 이듬해 진나라는 중원의 각국으로부터 승상이라는 관리 제도를 도입했다. 장의는 요행이 진나라 역사상 첫 번째 승상이 되었다. 그 후 장의는 초나라 승상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당신의 보물을 훔치지 않았는데 오히려 곤장을 때렸소. 당신은 당신의 나라를 잘 지켜야 할 것이오. 내가 그 성을 훔칠 것이니까!
장의는 그 해의 굴욕을 잊지 않았다. 초나라 승상이 그때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던 젊은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의가 승상이 된 그 해에 제거된 진진도 진나라를 떠났다. 장의의 예상대로 진진은 초나라에 몸을 의탁했고 공손연도 밥벌이를 잃어버렸다. 장의는 그 후에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야했다.
사람들이 장의를 한 바탕 때렸을 때 그는 복수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밥그릇을 잃어버린 진진과 공손연은 어떨까? 그들은 원한을 품을까? 복수를 할까?


P231~ 미친 돌
이 세상에 본래 보물은 없다. 빼앗는 사람이 많으니 보물이 있는 것이다.
돌 하나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다
기원전 283년, 조나라에서 온 외교사절단이 마침 함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절단의 수장은 40쯤 되었고 나약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이 사람의 이름은 린상여(藺相如)이다.
이 해에는 조나라 무령왕(武靈王)이 서거하고 12년이 흐른 때였다. 사추정변의 최대 수혜자인 이태(李兑)가 역사책에서 종적을 감추고 영원히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자 이어서 등장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돌이었다. 아주 평범한 이 돌은 한 사람 때문에 화씨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사추정변 이후 이태와 공자성(公子成)은 조나라 조정을 지켰다. 이태는 관운이 형통하여 조나라 사구(司寇:옛날 관명)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성이 세상을 떠나고 이태는 권력을 독차지했다. 그 후 10년 동안, 소진(蘇秦)은 국제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펼쳤고 사람들은 좋은 공연을 구경했다. 그러면서 조나라는 안정적으로 지냈다.
이태가 사라지고, 조하(趙何)에게 왕위를 계승한 후 14년 만에 친정의 기회가 왔다. 만약 계산이 틀리지 않다면 사추정변 때 조하의 나이는 13살 정도였고, 친정을 한 시기는 25살 정도인 것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인 것일까?
13세의 조하는 절대 정변을 계획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음해할 정도의 인물이 못 된다. 진짜 배후 세력은 이태와 공자성 이었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공자성은 조나라 귀족의 세력을 대표했는데, 이태는 조나라 내부에 있는 이 세력의 무서움을 날카롭게 관찰했고, 자신의 길을 여는데 아주 유용하게 이용했다.
정변을 겪은 후 오랫동안 조나라의 가장 높은 지도자인 혜문왕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조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설마 혜문왕은 사추궁 안에 갇혀 배고픔과 구타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친 아버지라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그는 알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사 직전이라는 것을 아들보다 누가 더 참기 힘들겠는가. 하지만 조하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그는 이미 실권을 빼앗겼다. 유일하게 군주에게 충심을 다하던 비의(肥義)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난 후에 조하는 군주라는 위치 외에는 아무런 실권도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공자성은 군주의 실권을 빼앗고 대권을 독점할 수 있었으니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조씨의 자손에서 숙부, 백부까지 너무 많았다. 만약 그가 스스로 일어 설 계산이었다면 환자(桓子)와 무공(武公)의 실패가 교훈 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조나라의 권력은 누구의 손에 있던지 잠시일 뿐이다. 결국에는 조왕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조하는 이러한 환경에서 악몽과 같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권력을 잃고 다시 얻었을 때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였다. 어린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울 수 없었다.
조하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열 몇 살의 나이에 외롭게 권련의 틈에서 생존했다. 비록 조나라 대왕이라는 감투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조하의 어린 시절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힘겨웠다. 즐겁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조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의 부친인 무령왕의 성격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겁 많고 고분고분한 군주였다. 이러한 고분고분한 사람은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소위말해 착한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바보 같은 놈’의 손에 보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보물이 들여졌으니 말썽은 당연히 따라왔다.
이태가 떠나고 보물이 나타났다. 조하는 본래 하늘에서 내려온 길조라 여겼다. 그러나 오히려 하늘이 가져다 준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금은 부귀를 주고 옥은 평안을 지킨다.
이 말은 한낮 설탕 발림에 불과하다. 당연히 부귀가 드러나면 말썽이 오기 마련이다. 천지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부귀는 억지로 머물게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골치만 아프게 된다.
4백 년 전, 이 보배가 인간 세상에 떨어졌을 때 첫 번째 주인은 변화(卞和)였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돌은 이 주인을 만나 화씨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불길한 물건은 출현하자말자 자신의 주인에게 재난을 불러왔다. 모든 사람이 이는 그저 보통 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변화만이 이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고 굳게 믿었다. 사람들은 변화가 미쳤다고 비웃었다.
그렇다. 변화는 미쳤다. 모든 사람이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계속 말했지만 변화는 오히려 돌을 초나라 왕에게 바쳤다. 이는 정말로 죽음을 각오한 사건이었다. 다행이 왕은 변화의 목을 베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우롱한 죄 값은 치러야 했다. 변화는 다리 한쪽을 잃어 장애인이 되었다. 길을 걸을 때도 높았다 낮았다 하거나 뛰는 듯이 보였다. 이러한 사람이 거리에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 봤다. 변화는 특히 주위 사람들이나 함께 가는 사람들이 비웃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전국책(戰國策)》에 초나라는 황금, 진주, 가죽, 상아들이 풍성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초나라에 진주 옥기가 풍성했기에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변화도 그 중 한명이었지만 소수가 다수를 따르는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이라고 말하면 결론은 돌이 된다.
쇠고집인 변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의 왼쪽 다리를 자른 초나라 왕이 서거했다. 변화는 두 번째로 보물을 헌납했다. 이번의 결과도 지난번과 같았다. 보물 헌납이 실패하자 또다시 조롱을 당했다. 그리고 변화는 나머지 다리도 잃었다. 이때부터 앉아 있는 시간은 많아지고 서 있는 시간은 적어졌다. 주위의 냉랭한 시선과 비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다리가 없는 변화는 이러한 비웃는 소리를 들으며 그 다음 초나라 왕이 즉위할 때까지 50년을 인내했다. 세월을 보내며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은 변화 어르신은 영리함을 배웠다. 다시 자른다면 어디를 자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변화는 이번에는 우회적인 전술을 선택했다. 그는 50년 전처럼 돌을 품고 군주 앞에 나아가 보물입니다 라는 한마디로 끝내지 않고, 돌을 갖고 형산(荆山) 밑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했다. 여론을 조성하는 수를 쓴 것이다. 그는 3일 내내 울었는데 떠도는 소문에는 피까지 토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이 든 어르신이 끊임없이 울어대니 군중들은 급히 고했다. 군주의 입장에서 분명 스트레스가 되었다. 우선 자신이 방금 즉위했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고 다음으로 호기심도 생겼다. 무슨 일로 나이 지긋한 사람이 울고 있는지, 설마 억울한 일이 있는 것일까?
초나라 왕의 생각이 맞은 셈이다. 노인은 그냥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뼛속가지 억울했다. 변화는 그것이 보물이라고 굳게 믿어, 좋은 마음으로 그것을 군주에게 바쳤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오히려 두 다리를 잘렸다. 충직한 사람이 군주를 기만했다는 죄를 받았으니 이러한 세상 좋은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말인가?
한바탕 노인의 하소연을 다 듣고 초나라 왕은 어찌됐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이것이 분명 보물이라 믿든 말든 손해를 보지 말아야 했다. 초나라 왕이 이 보물을 받은 후, 변화라는 인물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다. 변화는 떠났지만 화씨벽은 여전히 남았다. 중간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화씨벽은 초나라 승상 집에 출현했다.
이 물건이 승상의 집에 있으면서 가치가 있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초나라 왕이 그에게 하사한 것으로 영광스러운 물건이 되었다. 화씨벽 앞에서 엎어진 두 번째 인물이 바로 장의다.
초나라 승상은 이 물건을 영광스럽게 여겨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지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감상했다. 연회에서 승상은 또 보물을 꺼내 자랑을 했다. 손님들은 보통의 이 돌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며 소리쳤다. 좋은 보물이로군!
그러나 이 보물이 연회에서 돌려 보다가 잃어버릴 줄 누구도 몰랐다. 승상은 화가 안 나겠는가? 장의는 이번에 정말 억울했다. 도둑이라는 죄명을 씌운 것도 모자라 100대가 넘는 곤장을 맞았다. 엉덩이는 완전 문드러졌다. 장의는 그날을 회고하며 말했다. 보물은 무슨 보물. 썩은 돌이구만!
사실이 증명하지만 장의는 비록 성품이 바르지 못했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50년 후, 말썽만 불러일으키는 썩은 돌이 또다시 세상에 나왔다. 많은 피비린내를 거쳐 이 돌은 출현만 하면 자신의 본성을 드러냈다. 유감스럽게도 이 돌이 조나라에 왔고, 조나라 위아래로 골머리를 앓았다.
린상여는 진나라 왕이 어떤 보배를 원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분명 분쟁이었다. 진나라 현재 상황은 위염(魏冉)과 선태후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진나라 왕이 몇 년 전 조나라 왕과 같지 않다면 말한 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 15개와 보물을 바꾸자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닌가?
이번 출장은 처리하기 비교적 어려웠다. 만약 화씨벽이 그냥 진나라로 간다면 조나라의 체면이 깎이고, 주지 않는다면 전쟁의 구실이 됐다. 그리고 화씨벽의 몸값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린상여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조나라 사람의 체면을 떨어트릴 수 없다는 것과 화씨벽을 그냥 진나라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나라 왕에게 굴욕을 준다면 더욱 좋았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완벽귀조(完壁归赵)